바야흐로 화사하게 꽃이 피는 봄이다. 꽃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봄비를 타고 간간이 꽃 소식도 전해진다. 앞뒷산에 봄기운이 여간 파릇파릇하지 않고, 산행을 즐기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운 듯싶다.우리에게 있어 봄이란 여름보다 단순하다. 연초록 빛이 세상의 티끌을 덮기 때문일까, 새순이 요즘 골짜기마다 적잖이 눈에 띈다. 그게 淨土 찾아 나선 내게 주어진 일이려니, 웬걸 그 일이 이즈막에 서툴게 여겨져서다.하지만 아무리 서툴고 힘들어도 修行의 길은 어느 한순간도 멈출 수 없다. 따라서 수행의 길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자아의 실체, 즉 `본래의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한데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자아가 눈에 보이는 물질화된 생명력과 더불어 살면서 `본래의 나`를 가리고 나와 자연 사이를, 또 나와 부처님 사이를 떼어 놓아 마음을 흩뜨릴 때가 없지 않다.봄에 개울 따라 예 와서 괜스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네개울 동쪽에 너른 대밭이 있는데 대숲에서 펄럭이는 바라춤고목에서 노래하는 새소리이 정취를 혼자서 보고 들을 뿐 무엇에다 견주고 비길 수 있으랴自利行과 利他行은 본디 끝없느니 굽이치는 마음 깊고 깊어서 主觀이 客觀 따라 허물어지고 객관이 주관 따라 흐트러지고 깨달음에 점점 다가서는 이 설렘 촛불이 조는 시간 잠에서 깨었네이 작품에서처럼 요즘의 내가 선잠에서 곧잘 깬다. 오늘도 그런 아침이다.아침 늦잠에서 깨어 보니 유리창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눈높이 도봉산 등성이에서 봄이 달려오고 있었다. 봄비를 걷어 낸 햇살이 상쾌한 게 물오른 나뭇가지도 어제와 달리 푸른 기운이 역력했다. 푸릇하게 움트는 봄이다. 봄은 꿈이요 그리움이요, 사랑의 촉을 틔워 낸다.봄바람을 흔히 꽃바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바람이 무슨 빛깔일까? 봄바람에 실려 오는 새들의 지저귐도 한결 명랑하다. 잠시도 멈춤이 없는 생명의 날갯짓들, 푸르름이 한 겹 두 겹 겹쳐지며 숲을 이뤄 내는 자연의 질서가 신비롭다. 푸르름에서 꽃을 피우고 꿈을 가꾸는 속삭임, 그 꽃바람에 영(靈)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우리네 사회도 이 같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꽃이나 새들은 서로를, 또는 다른 어떤 것들과도 비교하지 않는다. 저마다 제 특성을 한껏 드러내고도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 남과 비교하지 않기에 시샘을 낳지 않는다. 우리도 세상을 보는 눈은 크게, 헛소리를 듣는 귀는 가늘게, 그리고 속세에 대해서는 숨을 여리게 하면서 살면 서로 간에 시샘도 탐욕도 없지 않을까!모처럼 봄바람에 끌려 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무심히 앉았다가 서둘러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요즘 들어 고르지 못한 내 마음밭을 봄갈이하고픈 간절함이 불쑥 일었던 것이다.도봉산행, 꽃샘추위를 헤집으며 내리는 햇살이 투명하고 싱그러웠다. 산기슭 곳곳에서 백매화 꽃가루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매화 꽃망울만큼이나 황홀해지고 싶었다. 춘삼월에 부는 바람은 역시 맑고 푸르렀다.발길 닿는 곳이 깊은 골짜기어도 상관없었다. 새순, 새촉을 눈여기며걷다가 문득 뒤돌아보자니 내 지난날들이 꽃샘추위도 아랑곳없이 실타래 풀리듯 푸르름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꽃바람을 가르며 걷는 걸음걸음이 가벼웠다.어머님을 그리워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詩 한 수 올립니다.화창한 봄에 다녀오고 싶다푸른 바람이 부는 어머님 유택에언제나 너른 품을 내주는진달래 향, 흙내 가득한 선산그 길목에 들면 산솔새 노래하고따스한 햇살 따라 피어나는 꿈넉넉한 삶이 추억으로 흐른다땅을 뚫고 불쑥 솟는봄날 연둣빛 새싹의 생기처럼오늘은 평화로운 삶을 위해내일은 혜안의 깨달음을 얻고자오가는 그 길에 바람 다습다나를 내려놓고 나를 얻는구나봄날, 어머님 품에 안기는구나. -어머님을 그리워하며마음잡고 나선 도봉산행에서 내 가슴이 얼마나 비워졌을까, 어느덧 해가 기운다. 산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해넘이가 무척 고왔다. 내 인생의 저물녘도 저 노을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과연 내게서도 저렇듯 고운 빛깔을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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