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이 울리고 119소방차가 왔다. 사람이 실려나갔다. 그러나 그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고, 난투극이 벌어져도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학교, 직장, 사회에서 집단 따돌림이 이뤄져도 ‘나만 괜찮으면 신경쓰고 싶지 않은 일’로 치부된다. 이 같은 현상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우리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집단 침묵에 빠져들며 소외현상도 깊어지고 있다. 이웃이 사라진 것이다. ‘이웃’이 사라진 우리사회를 조명한다. /편집자 주부여지역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박명준(가명·75세)할아버지가 지난 11월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요양원에 입소한 지 14개월 만이다. 치매와 당뇨, 고혈압 등 지병을 앓았던 박 할아버지. 그는 입소 이후 줄곧 ‘콧줄 식사’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이 기간 동안 박 할아버지를 찾는 전화는 한통도 없었다.TV를 보다 ‘엄마, 아들’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던 박할아버지. 결국 그는 찾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다가 요양원에서 쓸쓸한 삶을 마감했다.요양원에서는 (박할아버지의) 사망신고 절차를 밟다가 슬하에 아들 두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두 아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길도 배웅하지 않았다.할아버지는 끝내 한 줌의 재로 차가운 납골당에 모셔졌다.공주의 또 다른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최경숙(가명·81세)할머니는 눈만 뜨면 ‘영미(가명)야, 영미야...’라고 중얼거린다.보호사들은 최 할머니의 ‘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 할머니를 찾는 친인척은 아무도 없다. 보호사들은 최 할머니가 요즘 들어 말 수가 적어지고 식사량마저 줄어 긴장하고 있다.요양원 한 관계자는 “치매와 합병증을 앓고 있는 노인들 중 일부는 가족들의 방문이 아예 끊기는 경우가 많다”며 “자식들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충남도에 따르면 2014년 12월말 도내 250여 개 요양원에서는 6천여 명의 노인들이 생활하고 있다.막다른 선택을 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이들의 마지막 선택 역시 외로움과 가난, 질병이 주된 원인이다. 특히 도내 노인 자살률은 전국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침묵의 살인’으로도 불리는 ‘황혼 자살’은 취업문제와 충동적 자살 등 사회 문제로 대표되는 ‘청년 자살’에 가려져 사회적 관심에서도 멀어진 상태다.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 교수는 “황혼 자살의 증가는 사회적 보장제도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단기적으로는 외로움과 우울증 같은 노인의 정서적인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