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감정은 감춘 채 ‘감정노동’을 통해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였다. 최근 발생한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이나 지난해 4월 포스코 그룹의 한 임원이 비행기 내에서 ‘라면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감정노동자들의 직무 스트레스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다. 감정노동자의 실태와 대책 등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청양군 모 휴대폰 판매점에서 3년째 근무 중인 김 모(30)씨는 출근해서 유니폼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속마음’이라는 것은 없다. 자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늘 상냥하게 웃으며 고객을 응대해야 한다.
화부터 내는 고객들을 대할 때에도, 본인 잘못이 아닌데도 고객이 불만을 토로하거나 불만을 접수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고객 앞에서도 무조건 미소를 지으며 90도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렇게 고객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치르고 퇴근한 날이면 어김없이 불면증에 시달리며 가슴이 저민다. 김씨는 “감정을 숨긴 채 무조건 웃어야 하는 내 모습이 처량할 때가 많아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생떼와 욕설을 일삼는 고객들과 대면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보령시 모 콘도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 임 모(29)씨도 마찬가지다. 주말 점심·저녁 식사 시간에는 고객들이 몰려 3∼4시간씩 계속 서서 일을 하는데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뻐근해도 계속 미소를 지어야 한다.
성희롱성 농담을 일삼는 남성 고객들에게도 화를 낼 수 없다. 임씨는 “서빙을 할 때 짓궂은 장난을 치는 남성 고객들이 있는데 불쾌함을 참아가며 언제나 미소만 지어야 하는 근무현실을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감정노동자들은 일부 고객들의 폭언과 생떼에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를 때가 많다보니 치솟는 ‘화(火)’를 제어하지 못해 ‘화(禍)’를 입기도 한다.
우울증, 화병 발병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청양군발전연구회의 한 관계자는 “인권사각 지대에 놓인 감정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과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국내 임금근로자 1770만명 가운데 740만명 정도를 감정노동자로 추정하고 있다.
프리랜서 이인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