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음악의 선율...따뜻하고 부드러워 천국을 맛본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독특한 여행지다. 도시가 웟동네와 아랫동네 두 구역으로 나뉜다. 겉 모습만 봐서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이 둘은 각기 높낮이가 다른 두 개의 언덕에 각기 자리했는데, 고르니 그라드라 불리는 윗동네에는 아직도 대리석 돌길이 깔려 있는 과거의 크로아티아가. 아랫동네에 해당하는 도니 그라드에는 모던한 건축물이 들어선 현대의 크로아티아가 자리한다.크로아티아의 수많은 해안 도시들 중에 어느 곳부터 가야할지, 자그레브를 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과연 큰 가치가 있을지 그런 걱정은 우려에 불과했다 자그레브를 시작으로 만나는 크로아티아와 그렇지 않은 크로아티아는 이해의 폭에서 큰 차이가 있다.마치 부모를 알아야 한 사람의 본질이 조금씩 보이듯,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무엇을 애정하는지 또 그것을 어떤 식으로 지켜 왔는지를 가벼운 산보만으로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도시가 자그레브이다. /편집자 주 유럽의 도시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 당연히 광장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처럼 자그레브의 광장 역시 도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지그레브의 총독을 지냈던 옐라치차 총독의 이름을 그대로 따 지은 반 옐라치차광장은 예나 지금이나 자그레브의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역할과 수많은 문화행사의 무대, 또는 시민들 만남의 장소로서 활기찬 시간을 보낸다.국민들 대다수가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에서는 아주 오랜 전부터 일요일이 오면 신도들이 크로아티아 전통 의상을 입고 성당을 찾았다. 이를 추억이라도 하듯,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1년에 한 번씩 국내의 여러 지역에서 전통 춤꾼들이 자그레브에 집합한다.필자가 찾은 자그레브 옐라치차 광장에선 연중행사로 열리는 민속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행운과도 같이 필자가 찾은 옐라치치 광장에서 공연이 열렸다.한 지역에서 최소 수십명씩 모인 춤꾼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음악과 공연을 시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잠시 천국을 맛본다. 전통을 사랑하는 자그레브의 올드 타운에는 이토록 깜찍한 선물들이 사방에서 도사리고 있다.IMG2@ 자그레브 대성당은 꼭 봐야 하는 명소다.(또 다른 이름은 성 슈테판 성당이다.)자그레브 대성당의 아름다움은 도시 어디에서든 바라보이는 쌍둥이 첨탑의 위엄을 통해 예감할 수 있었다.크로아티아 지폐 1000쿠나 뒷면에도 그려 넣을 만큼 자그레브 대성당에 대한 크로아티아 국민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높이 100미터가 넘는 두 개의 첨탑은 시내 어디에서든 보여 자그레브의 나침반으로 통한다.화려함을 넘어 경건함까지 느껴지는 신고딕 양식의 웅장한 성당 안에는 화려한 조각상과 흐체스코화, 주엣 크로아티아 상형문자 등 가치 있는 유물들이 있어 크로아티아가 애지중지하는 보물로 꼽힌다.우아한 외관만큼이나 역사적, 미적가치가 출중한 성당의 내부는 매일 새로운 신도들의 숨결로 더욱 고결하게 장식된다.자그레브 대성당 앞으로 세워진 황금빛 성모 마리아 조각상은 머리 위로 12개의 별이 반짝인다. 스톤 게이트로 향했다.자그레브도 한때 성벽 도시였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스톤 게이트다.성벽에는 모두 다섯 개의 문이 있었는데, 1731년 대화재 때 모두 소실되고 스톤 게이트만 남았다.트칼치체바 거리와 이어진 라디체바 거리로 들어서 낮은 오르막길을 오른다.마치 어둡고 작은 터널처럼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스톤 게이트는 자그레브 사람들에게 언제나 소중히 여겨지는 공간이다.스톤 게이트 벽면, 그 한쪽 구석에서 쉼 없이 새로 피어오르는 작은 촛불들이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과거에 중세도시 그라데츠였던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쌓아둿던 외벽과 네 개의 관문이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인 스톤게이트는 가톨릭 신자들이 꼭 방문하는 성지순례지로 삼고 있다.그 모든 이유는 게이트 벽에 여전히 걸려 있는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이다.과거에 목제로 지어졌던 성문을 모두 태울 만큼 큰 화제가 일었지만 유일하게 타지 않고 온전히 남은 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신성한 그림 속의 성모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 신성한 믿음은 자그레브 시민에게 당연한 것이어서 잠시라도 스톤 게이트에 발을 디딘 사람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신도들의 마음을 표하며 한시도 꺼지지 않는 촛불과 그 앞의 작은 기도의 장들은 언제나 분주하다.스톤 게이트에서 언덕으로 조금더 올라가면 자그레브 대성당과는 조금은 다른 미소를 띠게 하는 성 마르크 성당이 기다리고 있다.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그라데츠는 한적하고 깔끔한 구역이다. 의회와 대통령궁이 있어 더욱 그런 감이 없지 않다.단정한 거리를 걷다보면 의회 건물 앞쪽으로 성 마르코 성당을 만날 수 있다.널찍한 성 마르크 광장의 중심을 지키고 서 있는 자태가 단단한 와중에도 지붕의 타일 장식이 성당 특유의 엄숙함을 싹 지워 없앤다.레고로 열심히 맞춰 놓은 것도 같고 광택이 나는 실로 촘촘히 짜놓은 자수 같기도 하다.성 마르크 성당이 1256년에 처음 완성된 후 몇 번의 보수를 거쳤고 타일 모자이크는 1880년에 건설됐다.지붕위의 두 문양 중 왼쪽은 크로아티아 최초의 통일 왕국인 크로아티아와 달마티아, 슬라보니아 왕국의 문장을 혼합한 것이고, 오른쪽은 자그레브시를 상징하는 문장이다.이런 역사적 가치가 짙은 타일 모자이크이자만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는 일종의 예술 작품처럼 다가가기도 한다.성당 정문을 장식하는 호화로운 고딕 양식의 조각상들을 감상한 후 건물을 맴돌며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아름다움들을 관찰해보라. 그러다 하루 중 어느 정각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성 마르크 성당에서 매시 정각에 퍼트리는 유독 화려한 그 종소리에 빠져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주황빛 노을 받은 자그레브의 지붕들을 바라보며 곧 다가올 밤의 시간에 미리 설레는 시간이 될 것이다.글.사진 이인식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