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패(愼言牌)라는 것이 있다. 말조심을 하라는 패다. 연산군이 신하들의 간언(諫言)이 성가셔 목에 걸고 다니게 했다는 것이다.“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고, 혀는 목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니,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다. 이는 원래 다른 사람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 당(唐)나라가 망한 뒤 다섯 왕조에 걸쳐 열한 명의 임금을 섬긴 ‘풍도(馮道)’라는 재상의 처세관이라고 한다. 이런 처세관 덕에 그는 73세까지 무탈하게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다고 한다.스스로 근신하며 말을 삼가는 사람에 시비를 붙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곧 폭력이 된다. 하물며 연산군과 같은 권력자가 신하들에게 이를 강요하면 곧 언로를 막는 언론탄압이 된다. 조선총독부 치하에서, 해방 후 독재정권의 치하에서 또한 그랬다. 박정희 사후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보안사를 내세워 이른바 ‘언론통폐합’을 단행하고, 많은 언론인들을 강제로 해직시켰다. 이후 5공화국에서는 ‘보도지침’을 통해 지속적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로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가 많이 달라졌다. 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 언론의 위상이 그만큼 커졌던 것이다. 권력과 언론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공생했다. 이 같은 구도에 재벌이 또 끼어들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그리고 언론권력이 굳건한 카르텔로 일종의 과두체제(寡頭體制)를 형성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큰 힘은 정치권력에게 있다.권력과 자본에 영합하는 언론의 민낯은 침묵 아니면 가짜뉴스로 나타난다. 특히 가짜뉴스는 세뇌(洗腦) 아니면 선동(煽動)이다. 일찍이 언론통제의 대가로 알려진 나찌의 괴벨스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 번 들으면 부정하고, 두 번 들으면 의심하고, 세 번 들으면 믿는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와 똑 같은 얘기가 이미 동양고전에도 나온다.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고사로,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든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지만, 두 사람 세 사람이 계속 말하면 믿게 된다는 것이다.민주주의를 진전시키려면 제도를 끊임없이 가다듬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공정하고 투명한 게임의 룰(rule)을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그에 합당한 시민의식이 결합될 때 그 빛을 발한다. 적폐(積弊)를 말하며 지난 정권 시절의 권력과 언론만을 탓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의식이 깨어있으면 ‘삼인성호’의 유언비어 따위에 쉽게 현혹될 리가 없다.‘밝은 생각 좋은 소식’이 되겠다며 대안언론 기치로 내걸고 창간한 ‘백제신문`이 어느덧 23주년이 됐다. 처음 내걸었던 거창한 슬로건도, 시작할 때의 그 열정과 포부도 다소 퇴색된 듯해 말하기 민망하지만, 백제신문은 몇몇 사람의 것이 아니다.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한 숟가락의 힘을 보태는 사람이 늘어나는 한 백제신문의 미래는 밝다. 깨어있는 군민이라면 자기검열이라는 마음 속 신언패(愼言牌)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백제신문과 함께 하자!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며, 지역 언론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점을 자각하는 23년의 길, 창간 23주년을 맞아 백제신문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오늘에 있기까지는 오직 애독자여러분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백제신문 임직원들은 더 나은 사회가 되는데 기여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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