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박해 때 붙잡혀 1년간 옥살이 끝에 1798년 순교가혹한 매질과 배교 회유에도 굳건히 신앙 지켜 이도기(李道起) 바오르 정산순교 성지인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서 축복 미사가 봉헌됐다.이날 유흥식 주교를 비롯 김영삼 베드로 신부, 김돈곤 청양군수,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 신도 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유흥식 주교는 강론을 통해 "충남 청양 태생인 그는 글을 알지 못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덕행 실천에 힘썼고, 신앙 때문에 위협을 받게 되자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데 애를 썼다"며 "정산관아에 끌려가서도 `무릎 밑 뼈가 드러나고 골수가 땅에 흘러내릴 때까지도`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증거했다"고 말했다.정산성지 조성에 힘써온 김영삼 베드로 신부는 "`정산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이도기 바오르의 믿음살이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에 대한 신심, 철저한 성모신심으로 요약된다"며 "옥중에서도 그는 현실을 뛰어넘어 천주를 뵙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고, 마지막 심문 때 극도의 고통 중에 있음에도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를 부르며 늘 천주 곁에 머무르려 했다. 옥중생활과 고난 또한 예수님과 성모 수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통해 이겨냈다"고 말했다. 김돈곤 청양군수는 "이도기 바오르 순교자의 얼을 기릴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정산일기`란 이도기 바오르의 삶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기에 일기(日記)라는 제목을 붙인 듯하다. 정산(定山)은 이도기 바오르의 호가 아니라 그가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한 마을 이름이다. 청양 태생의 이도기 바오르는 정산으로 이주하여 복음을 전하며 살던 중 체포되어 정산현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그곳과 정산 장터에서 수난을 당하였다.`정산일기(定山日記)`의 주인공으로 많이 알려진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1743년 충청도 청양 태생으로 1797년 정사박해 때 붙잡혀 이듬해 1798년 6월 12일 순교했다. 향년 56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