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이야기 차곡차곡 쌓여...유럽 특유의 낭만 만끽아마도 세계사 관련 책에서 들어봤을 법한 생소한 이름 발트해. 이곳에 오순도순 모여 있는 세 나라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를 발트3국이라 부른다. 유럽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어 오랫동안 이민족과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온 세 나라는 1991년에 독립국이 되었다. 이 나라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수려한 자연과 놀라운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이름난 나라에 비해 착한 물가 덕분에 큰 부담 없이도 유럽 땅을 밟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웬만한 유럽은 다 다녀온 사람에게도 새로운 여행지로 꼽힌다. 비슷한 듯 다른 발트해의 세 나라를 지난 6월11일부터 20일까지 다녀왔다.유럽 여행이라고 모두가 한 달 치 월급 이상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저렴한 물가로 금전적 부담은 줄이고, 유럽 특유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발트3국을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우리나라에서 발트 3국까지 가는 정규 직항은 없다. 대부분 유럽행 항공기를 이용해 경유해야 한다.필자는 지난 6월10일 터기항공을 이용해 경유지 이스탄블을 거쳐 리투아니아 빌뉴스공항으로 입국했다.발트3국 가운데 최남단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는 발틱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언제나 온화한 기후 덕분에 이 세상 도시가 아닌 듯한 쾌적함과 상쾌함이 가득하다. 14~17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강대국이었으며, 수도 빌뉴스(Vilnius)는 무려 1323년에 건설한 오래된 도시로 중세 시대의 수많은 흔적과 유산이 넘쳐난다. 필자는 유럽을 수십번 둘러보았으나 리투아니아 빌뉴스는 처음 방문이다.빌뉴스는 삐죽한 고딕 건물이 즐비한 리가나 탈린과는 달리 그랜드 피아노를 닮은 선 굵은 바로크식 건물들로 인해 발트3국 수도 중 가장 독특한 모습이다. 이는 독립된 나라를 건설한 경험이 거의 없는 이웃 나라들과는 다르게 중세만 해도 북쪽으로는 발트해, 남쪽으로는 흑해에 이르는 거대한 나라를 이룩했었던 리투아니아의 반짝이는 역사를 잘 보여 준다. 지금은 그 영토를 다 잃고 발트해안가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지만 한때는 독일의 동방 진출을 저지할 만큼 거대한 땅덩어리를 자랑했던 선대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검은 성모마리아로 유명한 새벽의 문과 1604년에 건립한 카지미에라스(Kazimieras) 성당, 18세기 신고전주의 건축물인 구 시청, 아픈 유대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빌뉴스 게토까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도시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라트비아는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거쳤지만 여행자를 유혹하는 숨은 매력이 가득한 나라다.바르크, 아르누보 양식의 중세 건물들과 때묻지 않은 자연, 풍붑한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발트해의 보석이다..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넓은 면적과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한때 이웃나라 폴란드와 함께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중부 유럽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북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빌뉴스의 구시가지는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바로크 양식 건물들이 남아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리투아니아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성당과 대성당 광장. 옥외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과 종탑 앞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한가운데는 하얀색의 으리으리한 성당이 있다. 리투아니아가 기독교화되기 전 이교도 신에게 제사를 지낸 제단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는 리투아니아 최대 규모의 성당이 들어서 있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리투아니아 공작들의 무덤이 안치돼 있다. 지금의 모습은 1783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된 것으로, 디죠이 거리의 구시청사와 같은 사람이 설계했다. 종탑은 몇 년 전 전망대로 개조되었고 종탑에 문의하면 대성당 지하박물관 입장이 가능하다. 리투아니아어로 ‘대성당’이라고 하면 무조건 이 성당으로 통한다우주피스 마을·우주피스(U?upis)는 파리 몽마르트르(Montmartre)처럼 빌뉴스의 예술인 마을이라 불린다. 한때는 빌뉴스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버려진 지역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구시가지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으며 떠오르고 있다. 1년에 단 하루, 4월 1일 만우절에 우주피스의 예술인들은 독립선언(?)을 한다. 그래서 또 하나의 독립국, `우주피스 공화국`이라고 불린다. 엄밀히 말하면 `빌붙지 않기 기념일`. 마치 빌뉴스에 속해있지 않은 것마냥, 신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4월 1일 우주피스에 가려면 여권을 지참해야 하며, 입국 도장을 받아야만 한다.우주피스의 천사상은 2001년에 세워진 8.5m 높이의 검은 동상으로, 자유와 예술을 대표하는 이 마을의 상징이다. 카우나스 Kaunas 자유와 혁명의 도시카우나스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1.6㎞의 보행자 전용거리로, 양 옆으로 유명브랜드 상점과 분위기 좋은 바와 극장들이 있어 산책만으로도 즐겁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매우 뜻 깊은 장소다. 레닌 대로, 스탈린 대로, 가가린 대로처럼 소련 영웅 이름으로 거리명을 지었던 그 서슬 퍼렇던 시절에도 이 길의 이름은 ‘자유로’였다. 한때 금연도로로 지정된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 미덕을 해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공식적으로 금하지 않는, 거의 완벽한 자유가 보장된 거리이다.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Hill of Crosses)수많은 중세 유적이 산처럼 쌓여 있는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샤울레이에는 있는 십자가 언덕(Hill of Crosses)이다. 이곳에는 완만한 언덕 길을 따라 약 40만 개의 십자가가 빼곡히 박혀 있다. 러시아가 리투아니아를 점령했을 때 종교를 박해한 러시아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하나둘 세우기 시작했는데, 당시 이곳 사람들은 밤마다 몰래 언덕에 올라 각자 소망을 담은 십자가를 언덕에 꽂았다. 이 언덕은 러시아가 리투아니아를 점령했던 시기에 만들어 졌는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한다.실종되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무사귀한을 기리거나 처형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조국의 독립을 바라는 마음들을 담아 하나 둘 심기 시작한 십자가가 40만개에 달한다.러시아가 3번이나 불도저를 이용해 이 언덕을 없애려했으나 그 이후 또 사람들이 십자가를 심어 결국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라고 한다.넓게 펼쳐진 들판과 파란 하늘의 풍경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라 자연이 참으로 부러운 나라라고 느껴진다.모두를 품어 주는 자연만큼이나 인류를 안아 줄 듯한 예수님의 목각 조각은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빛바랜 나무가 가지고 있는 회색빛의 조각상이 무거운 분위기를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초록의 들판과 파란 하늘이 만들어 주는 배경으로 보다 두드러지게 보이기도 한다.수많은 십자가, 리투아니아에서 종교가 금지된 시대에 비밀리에 이어오던 믿음에 대한 상장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엔 더 많은 작은 십자가들이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언덕을 돌아보고, 수도원 방문을 권한다.수십 만개의 십자가가 있는 이곳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알려지게 될 것이다. 특히 전 세계인들에게 전달될 것이 분면하다. 많은 방문객으로 힌한 부정적인 요소를 들여다보기보다는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진 곳이기에 분명 가톨릭의 성지로 자라 잡아가고 있다.더욱이 특정 종교의 것만이 아닌 저항의 상징으로 고통받고 견디어 내었던 희생의 대가로 가져온 평화의 상징으로 존속해 나갈 것을 소원해 본다.언덕을 내려오면서 돌아다보게 되는 계단들은 마치 천국의 문으로 가는 계단처럼 보였다.아무 욕심도 근심도 없어져 버린 텅 빈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마는 아닌 것은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 가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십자가 언덕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특정 종교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인들에게 열려 있는 곳이기에 리투아니아를 여행한다면 꼭 방문할 것을 권한다.지금까지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개인에게 뜻 깊은 일이 생길 때마다 여기에 십자가를 세워 기념하곤 한다태양이 강력하게 내리쬐는 벌판인데, 눈이 내리는 겨울의 모습은 또 어떨지 무척 궁금해진다. 이 아름다운 광경이 영원히 지속되는 한 이 나라의 아픈 역사는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 같다.리투아니아인의 의지와 소망, 종교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는 십자가 언덕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장엄한 기분을 선사한다. 트라카이 Trakai 과거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던 곳빌뉴스에서 불과 28㎞ 떨어져 있다. 수십 개의 호수, 나무가 우거진 숲, 그리고 섬 한가운데 붉은 성곽이 만들어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지하수에서 발원한 호수는 바닥이 보일 만큼 맑고 날씨 좋은 여름날엔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수질 관리를 위해 트라카이 주변으로 산업 시설 건설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트라카이를 보지 않고 리투아니아에 가봤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필자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라트비아의 리가로 출발했다./글.사진 이인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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