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봄 가뭄 때문에 마늘 농사가 엉망이라고 한다. 예년에 비해 씨알이 작아 씨 값도 못 건졌다며 농심은 상처를 입었다. 나도 지난해 겨울 마늘을 심을 때는 기대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여덟 접을 샀는데, 토종마늘과 그렇지 않은 마늘 씨앗을 구분하지 못해 섞어 심는 실수를 하면서도 새싹이 나는 것을 보고 흐뭇했다. 풍작을 기대하며 즐거울 때쯤 시련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깨알 같은 잡초가 보였는데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다 보니 3주만에 마늘 잎새와 잡풀이 온 밭에 뒤섞여 가득했다. 땀을 폭포수 같이 흘려가며 8시간 동안 혈투를 벌인 끝에 잡초는 어느 정도 해체되었고 보람도 느꼈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며 3주 후 풍성한 수확을 기대 속에 다시 찾아간 마늘 밭은 그야말로 ‘정글’이 되어 있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과연 마늘이 온전할까?” 절망감으로 풀숲을 헤치고 마늘잎을 살펴보니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줄기의 흔적만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낫으로 풀을 베고 땀을 흘리며 고구마를 캐듯 마늘밭을 일구었다. 수확을 마친 후 이웃과 비교해보니, 그렇지 않아도 가뭄으로 작아진 이웃의 마늘보다 딱 반했다.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투입비용은 고스란히 사라졌다. 농사를 지었다며 내놓기가 민망하다.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깨어진 유리창 이론’에서도 보듯이 작은 불법과 범죄의 씨앗은 잡초의 풀씨처럼 안일하게 방치했을 때는 우리사회의 기틀마저도 위협하는 커다란 범죄와 사고로 이어진다. 잡초에게 패배했다고 그 잡초를 그냥 놔둘 수는 없듯이, 올해 농사를 망쳤다고 내년 농사를 포기할 수 없듯이, 한순간 불법과 범죄에 밀린 것처럼 되었다고 해서 그냥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회의 작은 잘못된 행위를 무시하여 커다란 범죄와 사고를 불러온다면 엄청난 땀과 눈물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경찰은 당연히 앞장서야 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불법과 범죄를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잡초를 무시했다가 마늘농사는 실패했으나, 그래도 첫 수확이라 지인들과 나눌 생각을 하니 창피하기도 하지만 기분은 좋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올해의 교훈을 다음에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맹세한다.송영훈 경감 (청양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