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며 아름다운 시선이 머무르게 하는곳...여전히 아름답고 생기로 가득하다몽마르트르는 인상주의의 ‘마네’, ‘모네’, ‘드가’, ‘피사로’, ‘르느와르’, ‘고흐’, ‘고갱’, ‘세잔느’, ‘쇠라’, 입체주의의 ‘피카소’, ‘조르쥬 브라크’, 소설가인 ‘에밀 졸라’, 음악가인 ‘쇼팽’ 등 수 많은 예술가들의 활동지였다.유명한 화가로는 기억되지 않았지만, 몽마르트르의 예술가들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과 그의 아들인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다.1865년 리모쥬 근처의 마을에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쉬잔은 서커스단의 곡예사로 자유분방한 여인이었지만, 사고로 서커스를 그만두고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세탁소의 배달원이 돼 화가들의 집을 드나들면서 르느와르나 뚤루즈 로트랙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현재는 수 많은 예술가들이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몽마르트르에서는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계단에 앉아 음악도 들어보고, 연극하는 것을 구경하며, 참새에게 먹이도 주면서 휴식을 취하면 좋다. /편집자 주"말도 하지 않으리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무한한 사랑만이 솟아오르네나는 방랑자 처럼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리자연과 더불어 여인들 데리고 가는 것처럼 가슴 벅차게-랭보(Sensation)중에서- 카페는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오아시스이다.-에드가 모랭-세상에는 카페를 가는 사람과 카페를 가지 않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카페를 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우월하다.-조르주 쿠트린- 이제 취할 시간입니다. 박해 당하는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하십시오. 술 이건, 시 건, 덕 이건, 아무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 취하십시오.-보들레르-"몽마르트르 솔르가에는 카페&레스토랑인 고흐의 `몽마르트르의 선술집` 배경이 된 오베르쥬 드 라 본느 프랑케트(Auberge de la bonne Franquette)와 건너편에는 위트릴로(Maurice Utrillo)의 `콩쥘타` 배경 카페가 있다. 많은 화가들의 그림속에 자주 등장하던 콩쥘타는 20세기 초반 가난한 화가들에게서 식사비 대신 그림을 받아 주기도 했던 곳이다.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라 메종 로즈`가 있고 카바레 `라팽 아질`도 있다.장미꽃으로 장식된 테라스와 분홍색과 초록색으로 칠해진 아주 조그만 카페 메종 로즈(La Maison Rose).작은 테이블이 4개 정도 놓여진 곳으로 화려한 느낌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몽마르트르의 대표적인 화가인 모리스 위트릴로와 그 어머니 쉬잔 발라동이 살았던 곳이다.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오르면 2개의 테이블과 주방이 있다. 벽면에는 온통 위트릴로와 그의 어머니였던 쉬잔 발라동의 사진이 걸려 있다.발라동은 사생아로 태어나 9세부터 소녀가장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16세에 시작했던 서커스의 공중 그네 타는 일을 하다 그네에서 떨어져 더 이상 그 일을 못하게 된 발라동은 그 후 화가의 모델이 된다. 르누아르나 로트렉, 드가 등이 그녀를 그렸고 그때부터 쉬잔이란 이름도 얻게 되었다.쉬잔 발라동에게는 열 여덟 살에 낳은 사생아 아들이 한 명 있었다. 화가들 사이를 전전하는 어머니를 둔 그녀의 아들은 9살이 될 때까지 성도 없이 살았다. 우연히 스페인의 화가인 위트릴로가 그를 입양해주어 마침내 위트릴로라는 성을 가지게 된 쉬잔의 아들 모리스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였지만 언제나 갈증을 느꼈다. 열 살 때부터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에서 압상트 술맛을 알게된 위트릴로의 어린시절은 알코올 중독과 정신 착란으로 점철되었다. 이른 나이에 병원에 입원한 그에게 어머니 쉬잔 발라동이 제시한 것이 그림이었다. 위트릴로는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예술성을 이어받은 그는 곧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위트릴로는 몽마르트르의 거리 구석 구석을 자신의 화폭에 남겨 모딜리아니와 함께 몽마르트르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메종 로즈에서 조금 아래에 내려가면 라팽 아질(Au Lapin Agile)을 만난다.라팽 아질은 프랑스 샹송을 보전하려 만들어진 유서 깊은 카페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가 하루를 마감하고 휴식을 취하던 Bar였다.과거 Cabaret des Assassins이라 불리웠던 이 클럽의 현재 이름은 `라팽 아질`이다. 핑크빛 외관 만큼이나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이다.화가이자 풍자 만화가였던 앙드레 질(Andre Gill)이 포도주병을 들고 냄비에서 튀어나오는 `민첩한 토끼`인 라팽 아질을 벽에 그려 놓아 이곳의 이름도 화가 이름과 그림 속의 캐릭터 이름이 합쳐진 Au Lapin Agile이라 붙여졌다.이 클럽은 세기말 당시에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던 장소다. 위트릴로, 모딜리아니, 피카소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 특히나 위트릴로는 이곳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기도 했다.지금은 유명한 샹송 가수 이브 마티유(Yves Mathieu)와 그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밤마다 몽마르트르를 19세기 과거의 라팽 아질 모습으로 돌려 놓고 있다.혁명과 집회의 시작 장소였던 몽마르트르는 19세기 고흐, 로트렉을 비롯해 많은 화가들과 시인들이 모여들었다.지금은 얼핏 보기에 환락가로 변해버린 듯 하지만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많은 화가 지방생들이 찾아든다.시대로부터 따돌림 당한 예술가들의 자괴감, 지루한 삶과 격렬한 희망, 그리고 사랑의 고뇌들이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때의 그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몽마르트르는 낭만적이며 아름다운 시선이 머무르게 한다.얼핏 봐서는 환락가로 변해버린 듯한 오늘날의 몽마르트르. 하지만 싸구려 빛깔의 카페는 이제 서서히 빛나기 시작한다. 그 곳에 머물렀던 예술가들로 인하여, 고흐, 로트렉, 르느와르..., 그리고 그들이 흠모하고 화폭에 옮겨왔던 쉬잔 발라동, 그녀를 사랑한 에릭 사티, 그리고 그녀의 아들 위트릴로 등 등...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 몽마르트르. 그래서 몽마르트르는 여전히 아름답고 생기로 가득하다. 그들은 왜 몽마르트르를 사랑했을까? 왜 그들은 해질 녘이면 화려하고 우아한 장소를 떠나 몽마르트르로 몰려들었을까?도시화 되어가는 파리와 달리 아직 순수함이 남아 있어서였을까? 극한 외로움에 지쳐 무도회장이나 환락가를 헤매다 모여들었던 것일까?가난한 예술가들은 값싼 잠 자리를 찾아 몽마르트르로 모여들었고, 이곳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시를 노래했다.그리고 지금의 몽마르트르는 비록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는 드물지만 몽마르트르의 하늘과 구불 구불 이어진 언덕이 기억하는 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 이야기가 있기에 몽마르트르는 여전히 삶의 숨결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살아 있다.절망감과 고독, 팽창된 몽상, 삶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몽마르트르. 그렇기에 우리는 몽마르트르 거리에서 내밀하고도 가슴 시린 그들의 삶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몽마르트르는 항상 다른 것을 꿈꾸며 현실과는 또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한 예술가들을 매혹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많은 화가들이 이 곳을 선택한 것은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언덕처럼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길을 헤매다 안식을 찾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몽마르트르는 삶의 숨결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공간이다.이곳에서는 황혼녘의 우수가 우리들의 어조를 느릿하게 만들 때, 나름대로 과장을 하며 문인들이 나눴던 끝없는 대화를 상상하는 묘미를 즐길 수 있다.또 몽마르트르의 거리나 연인들을 보며 새삼 동요되어 마음을 어지럽히는 추억에 빠져들기도 한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것은 혼돈을 불러오지만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준다. 이것이 바로 몽마르트르만의 매력이다."열린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보는 자는 닫힌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자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하며, 유리창 뒤에 숨어있는 것이 더 흥미롭다"라는 보들레르의 글귀가 떠오른다. 감춰진 것에 더 많은 것을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해 삶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 이인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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